서 론
우리나라에서 중독에 의한 사망은 일산화탄소 및 의약품에 의한 자살이 많으며, 농약에 의한 중독사는 점점 빈도가 줄어들고 있으나, 도시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농약 중독사가 여전히 많이 발생하고 있다. 2019년 농촌진흥청에서 발표한 농약등록현황에 의하면, 국내에서 시판되는 농약성분은 총 357종이었다. 또한 판매는 중단되었으나 부검시료에서 검출되어 여전히 사용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농약성분은 이피엔, 파라콰트 등 23종이었다. 2019년 농약등록현황을 바탕으로 농약을 용도별로 분류하면 단일 용도로 판매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약 10%인 39종은 복합 용도였다. 구체적으로는 살균제가 118건, 제초제가 116건, 살충제의 경우 115건, 살비제가 49건 및 식물성장조절제가 20건 등이었고, 살충제의 경우 아미트라즈, 비펜트린, 클로르페나피르, 다이아지논, 디메토에이트, 이피엔 및 말라티온 등 유기인계 농약이 가장 많았다.
파라콰트, 메토밀 등 고독성 농약은 사고 및 자살 등의 사회적인 문제로 판매 금지되어 이에 의한 중독사는 많이 줄어들었으나, 자살 목적으로 자극이 적은 수용성 및 저독성 농약을 음독하는 사례가 상대적으로 많이 발생하고 있으며, 수용성 함인계 제초제류인 글리포세이트와 글루포시네이트에 의한 중독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
2]. 또한 피레스로이드계 살충제의 경우 농약 제품에 함유된 유효 농약 성분의 함량이 5% 이하로 적고, 체내에서 신속히 대사되어 이러한 농약을 음독하고 사망한 변사자의 생체시료에서는 농약의 원 성분이 검출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이 때 사망의 원인으로 제품에 함유된 유독성 유기용매류에 의한 독성 발현이 지목되고 있다[
3,
4]. 농약에서 사용되는 유기용매로는 메탄올, 톨루엔, 자일렌, 에틸벤젠, 시클로헥산, 메톡시프로판올 등이 대표적이다[
5]. 이 같은 용매들은 농약 성분을 녹이기 위한 용제로 사용되며, 농약 제품의 자극적인 냄새가 이러한 용매 때문이다. 현재까지 농약 중독사에서 이러한 유기용매류에 대한 확인시험 및 이에 대한 독성 발현 기전 등에 대한 연구는 미비한 상태이다. 본 연구에서는 부검 및 검안 시료 중 농약 중독사에서 사망에 영향을 미치는 독성 유기용매류에 대한 분석 및 고찰을 수행하였다.
고 찰
진흥청 농약안전정보시스템에 의하면 농약 원제는 계면활성제, 전착제, 증량제, 유기용매, 유화제 등과 혼합하여 물과의 희석도 및 살포성을 높인 제형을 만들며, 이러한 제형에 따라 유제, 액제, 수화제, 입제 등으로 생산된다. 이 중 유제는 제조 시 비용 절감, 사용, 운반, 보관 등이 용이하고 농약성분의 균질한 배포가 가능한 장점이 있으며, 단점으로는 자극성의 냄새, 인체에의 유독성 및 작물에의 약해 등이 있다. 유기용매는 액제 및 유제 제형에서 농약성분이 물에 녹지 않는 경우 용제로 사용되며, 국내에서는 톨루엔, 자일렌, 벤젠, 메탄올 등이 주로 사용된다. 본 건에서 검출되는 유기용매류는 주로 액제 및 유제 제형으로 판매되는 농약의 음독에 기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톨루엔은 페인트, 신너, 접착제, 광택제, 본드, 농약 제품 등 다양한 분야에 사용되며, 흡입 시 환각 및 억제 작용을 나타내고, 이러한 환각 목적 남용에 대응하기 위해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의해 규제되고 있다. 톨루엔의 급성 독성으로는 신장 사구체 손상, 단백뇨, 간세포 손상 등이 보고되어 있고, 임상 증상으로는 담도 손상, 횡문근 융해증, 저칼륨혈증 및 저인산혈증 등이 있다[
9-
11]. 이 가운데 저칼륨혈증에 의한 부정맥, 급성 심근경색, 마비 증상과 대사성 산증 등이 사망의 가장 큰 원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톨루엔의 인체의 경구 급성치사량(lethal dose)은 50-500 mg/kg으로, 성인 60 kg 기준으로 3-30 g이다.
부탄올은 농약 제품에 많이 함유되어 있지만, 비교적 독성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경구 독성 시의 임상 증상은 주로 위장 증상, 국소 자극 등이 있고 아주 드물게 대사성 산증, 급성 신장 손상, 의식 저하, 저혈압 등 전신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되어 있다[
12].
본 건의 경우 톨루엔이 검출된 13건 모두에서 부탄올이 동시에 검출되었으며, 이 두 성분 외에 시클로헥사논 및 시클로헥사놀이 검출된 경우가 4건이었다. 톨루엔이 검출된 건에서의 농약 원 성분은 유기인계인 페니트로치온, 옥사디아진계인 인독사카브, 카바메이트계인 메토밀 및 카보퓨란 등으로 다양하였으며, 대부분 고독성으로 자체의 독성과 더불어 톨루엔 등 유기용매와의 병용으로 급성 독성 발현이 더욱 가중되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자일렌은 세 가지 이성질체(오르토, 메타 및 파라 자일렌)로 존재하며, 단독 또는 혼합된 형태로 사용되고, 노출 시 피부, 눈, 호흡기에 자극을 주고, 섭취 또는 흡입 시 전신 독성을 일으킬 수 있으며, 중독 증상으로는 중추신경계 작용에 의한 두통, 현기증, 운동 실조, 졸음, 흥분, 떨림 및 혼수상태 등이 있고, 또 다른 전신 증상으로 심실 부정맥, 급성 폐부종, 호흡 억제, 메스꺼움, 구토 및 간손상 등이 있으며[
13-
16], 자일렌의 최저중독치사량(lethal dose low, LDLo)은 50 mg/kg 이다. 에틸벤젠은 천연으로는 석유나 휘발유 등에 함유되어 있고, 석탄이나 가스, 석유 등이 연소될 때 생성되며, 석유 화학 공업에서 수지나 합성 고무의 원료인 스티렌의 중요한 원료물질이다. 에틸벤젠은 저독성이지만, 고농도의 에틸벤젠에 노출될 경우 눈과 목의 자극 및 현기증 등이 유발될 수 있다[
17]. 자일렌 및 에틸벤젠이 검출된 6사례 중 4건에서 피레스로이드계 살충제가 원 성분으로 검출되었고, 한 건에서는 원 성분은 검출되지 않고 대사산물인 3-PBA만 검출되었다. 델타메트린, 사이퍼메트린, 비펜트린 등은 제품에 함유된 농도가 낮아 농약 제품의 음독 시 자일렌 및 에틸벤젠에 의한 독성 발현이 사망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메탄올 자체는 독성이 낮으나 대사체인 폼산(formic acid)은 메탄올보다 6배의 독성을 나타내며, 체내에서의 대사 속도가 느려 대사성 산증에 의한 독성 발현 및 시신경 파괴가 보고되어 있다[
18]. 순수한 메탄올은 10 mL 섭취 시 독성 대사체인 포름알데히드에 의한 영구적인 시력 손상이 유발되고, 100-200 mL의 메탄올은 대부분 성인의 치사량에 해당된다[
19]. 자택에서 살충제를 음독하고 사망한 49세 남성의 부검시료 혈액에서 용매 분석 결과 메탄올이 검출되었고, 음독한 농약은 고삼 추출물을 사용하여 제조된 살충제이었다. 이 제품은 해충에 대한 접촉독 및 기피작용을 이용하여 살충 효과를 나타내며, 친환경 및 유기농에 사용되고 있다. 고삼은 마트린(matrine)이라는 활성 알칼로이드를 함유하며, 한방에서 고미 건위, 해열, 이뇨, 피부 기생충 구제 등에 사용되고, 차로도 음용되고 있다. 본 건에서 변사가 음독한 농약에 함유된 마트린의 함량은 0.6%로 농약 음독량을 고려할 때 마트린 자체로는 인체에 치명적인 독성을 유발하지는 않을 것으로 사료되며, 용매인 메탄올에 의한 급성 독성 유발 가능성을 추정할 수 있었다.
2012년 파라콰트의 사용이 금지되면서, 수용성 함인계 제초제인 글리포세이트 및 글루포시네이트에 의한 농약 중독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1,
2]. 또한 본 연구에 사용된 42건의 농약 중독사 중 글리포세이트는 7건, 글루포시네이는 4건으로 가장 많은 출현 빈도를 보였다. 수용성 제초제인 글루포시네이트가 함유된 농약 제품의 경우 검출된 유기용매는 메톡시프로파놀이며, 문헌 보고에 의하면 이 물질은 독성이 크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글리포세이트 및 글루포시네이트 음독 시 제품에 함유된 계면활성제 의한 독성으로 전신 부종, 심기능 저하, 저혈압, 쇼크, 순환기계 이상 등의 독성이 유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
검출된 용매 중 시클로헥사논, 시클로헥사놀 및 부탄알은 피부 접촉 및 흡입 시 자극, 부식 등을 나타낼 수 있으나, 경구로 과량 복용 시의 급성 독성에 대하여는 문헌에 보고된 바 없다.
본 사례에서 검출된 유기용매들 중 자일렌, 톨루엔 및 메탄올은 독성이 강하여 자체로 급성 독성을 유발할 수 있고, 기타 다른 용매들도 독성 발현의 가능성이 있으므로, 농약 중독사의 감정에서 유기용매의 분석을 병행하며, 사망 판정 시 농약 성분에 의한 독성과 더불어 유기용매의 독성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