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자세성질식사(positional asphyxia 또는 postural asphyxia)는 호흡 과정을 방해하는 비정상적인 자세를 비자발적으로 취하게 된 후 발생하는 질식사의 한 형태이다[
1]. 법의학 교과서마다 정의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공통적으로 술이나 약물에 취한 상태, 신체 질환, 제한된 특정 공간 등으로 인한 사고가 주된 원인이고[
2], 대개 거꾸로 매달리거나 상반신의 역위(또는 잭나이프 형태)로 인해 정상적인 호흡 운동의 장애로 인해 저산소증과 순환 부전이 발생하여 사망에 이르게 된다. 부검에서는 일반적으로 신체 소견을 거의 볼 수 없으나, 특히 역위의 경우 일부에서 현저한 울혈, 청색증, 점출혈 등 이른바 질식의 전형적 징후(classic signs of asphyxia)를 확인할 수 있다[
1,
3]. 이 외에도 십자가형(crucifixion), 시설의 제압(institutional restraint), 엎드린 자세 구속(position restraint) 등에 의한 사망이 자세성질식사의 예로 기술되어 있다[
4-
6].
특히 여러 교과서[
2,
4,
5]에서 자세성질식사를 외상성질식사(traumatic asphyxia)와 유사한 것으로 언급하거나 함께 묶어서 기술하고 있고, 심지어 영아의 사고성질식사도 자세성질식사의 일부로 기술하고 있는 경우도 있어서[
2], 이로 인해 많은 증례보고에서 자세성질식사라는 용어가 다른 형태의 질식사를 대체해서 쓰이고 있는 경우도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 자세성질식사의 진단이 다른 사인의 배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점에서, 급성 중독 사망이나 질병으로 인한 사망 등에서 임종기(agonal stage)에 특이한 자세를 취한 경우에는 사인에 대한 판단에 혼란이 있을 수 있다[
7].
본 연구에서는 부검 사례에서 자세성질식사로 진단되거나 가능성이 고려된 사례를 검토하고, 법의학실무에서 자세성질식사의 진단적 어려움에 대해 논의해보려 한다.
고 찰
자세성질식사는 기계적질식사(mechanical asphyxia)의 일부로, 흔히 외상성질식사(traumatic asphyxia)와 혼동되어 사용됐으나, Sauvageau와 Boghossian의 질식의 분류에 대한 제안[
9]에서 각각 ‘개인의 자세가 호흡 능력을 손상시키는 질식사의 유형’과 ‘무거운 물체에 의한 외부 가슴압박으로 인한 질식사의 유형’으로 구분하고 있는 것처럼 서로 전혀 다른 질식의 유형이다.
외상성질식사가 압착성질식사(crush asphyxia) 또는 압박성질식사(compression asphyxia)라는 저자별로 각각의 세부적인 의미는 다르게 기술되어 있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고[
10], 자세성질식사 역시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긴 하나, 적어도 ‘자세(position or posture)’와 ‘외부 가슴압박(external chest compression)’으로 특징지어지는 두 질식의 정의에서 겹치는 부분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과서와 논문에서 이 둘을 혼용하고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게다가, 자세성질식사가 외상성질식사에 비해서 비교적 최근에 보고되기 시작한 사인이고, 전체 질식에서 기계적질식 자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아서, 2012년에 국내에서 시행된 부검 사례 중 전체 445건의 질식사에서 기계적질식사는 9건(1.6%)에 지나지 않았으며, 자세성질식사는 그 중 3건으로[
11], 이에 대한 관심이 비교적 적었던 점도 이런 혼란에 기여를 했을 것이다. 본 연구의 사례 중 압착성질식 후 4년간의 병원 치료 중 사망한 한 사례에 자세성질식사로 사인을 결정한 이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국내에서도 Sauvageau와 Boghossian의 제안[
9]에 기반한 질식사 분류가 발표되었고[
11], 실제로 자세성질식사로 진단되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이들 용어를 좀 더 철저하게 구분하여 사용해야 할 것이다.
많은 연구에서 자세성질식사를 진단하기 위한 기준은 저자에 따라 다양하게 바뀌어 왔으나,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 무소견 부검이거나 일부 질식의 징후를 보인다. (2) 정상적인 가스교환을 방해할 수 있는 자세여야 한다. (3) 피해자가 다른 자세로 바꾸는 게 불가능해야 한다. (4) 다른 사인(내인사와 외인사)이 배제되어야 한다[
12].
본 연구의 사례 대부분에서 이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있었을 것이나, 실제로 부검 사례에서 이를 모두 적절하게 평가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어려움이 있는 경우가 많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3)항의 경우 제한된 공간에 갇히거나 고정된 물체에 걸리는 등의 특정 상황이 아니라면 사후에 이를 평가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그 외에 흔히 (3)항의 근거가 되는 약물, 알코올, 질병 등의 경우 그 자체 또는 서로 병합하여 자세성질식사와 경합하는 사인으로 고려될 수 있어서, (4)항의 평가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심지어 많은 증례보고에서 약물, 알코올, 질병으로 사망한 경우에 자세성질식 또는 자세성질식사를 경합하는 사인, 사망의 기여 요인, 또는 사망의 기전(mechanism)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deJong 등의 연구[
13]에서는 아편유사제와 관련된(opioid-related) 사망에서 자세성질식이 사망에 기여한 경우는 1/3이 넘을 것이라고 제안하였다. 이런 사례들에서 약물, 알코올, 질병이 사인이고 자세성질식이 사망에 기여를 했는지 혹은 자세성질식사가 사인인지를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은 명시하고 있지 않다. 물론, 약물이나 알코올의 사후 혈중 농도, 질병의 종류와 심한 정도, 각 사망에서 임종기(agony)의 길이 등이 고려 요소가 될 수 있으나, 실제로 이런 판단은 객관적 근거 없이 법의의사의 개인적인 경험에만 의존하기 쉽다. 따라서, 심지어 약물, 알코올, 질병 등이 각각 사망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 것으로 판단되는 사례에서도 사인의 배제를 위해서 이들에 대한 면밀한 검사실 검사는 필수적이다.
덧붙여, 주로 넘어져서 생긴 비교적 경미한 머리손상이 그 자체로 또는 앞서 말한 기여요인 들과 같이 작용하여, 일정 기간 의식을 잃게 하거나 자구력을 상실하게 하여 자세성질식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
14]. 고도 비만도 특히 시설의 제압이나 엎드린 자세 구속 등에서 위험요소로 알려져 있는데, Byard [
15]는 자세성질식사가 정상보다는 과체중, 특히 비만(체질량지수 30 이상)에서 더 많이 발생했다고 보고했다.
진단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각되는 (2)항의’자세‘ 역시 실제로 호흡장애를 유발했는지 또는 그 호흡장애가 사망에 이르게 할 수준인지를 사후에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생전에 호흡장애가 실제로 있었는지를 사후에 확인하는 방법은 없으므로, 이런 판단의 근거가 법의의사의 개인적인 경험뿐이거나, 불충분한 사후 재현을 통해 호흡곤란이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추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약물, 알코올, 질병과 연관된 사망의 경우, 임종기에 이미 자구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에서 사망 당시의 자세를 취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있는바, 명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사후에 취하고 있는 자세 자체보다 사건의 정황이나 사망 현장의 상황이 더 중요한 예도 있는데, 실제로 법의의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단 몇 장의 현장 사진이거나 현장 상황에 대한 신빙성이 없는 진술뿐인 경우가 많다. 특히 시체의 발견이 늦어져 사후 경과시간이 상당히 길어진 경우이거나 다양한 이유로 현장 상황이 보존되지 않을 때는 이런 판단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고, 특히 현장과 완전히 격리된 법의실무 환경이라면 자세성질식사로 진단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질 수 밖에 없다.
본 연구에서는 자세성질식사로 진단된 경우(A), 사인은 불명이나 자세성질식사의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는 경우 또는 자세성질식사가 경합하는 사인의 하나인 경우(B), 다른 명확한 사인이 있으나, 자세성질식사가 사망에 기여했을 가능성을 언급한 경우(C)로 사례를 별도로 구분하였으나, 전형적인 일부 사례를 제외하면 세 집단이 자세성질식이 사망에 기여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완전히 이질적인 집단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심지어 현장 상황, 과거력, 부검 소견, 검사실 소견이 유사한 사례들에서 다른 형태의 진단이 내려진 사례를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이는 앞서 말한 바대로 진단 기준 자체가 객관적으로 명확하지 않은 점, 개별 법의의사 간의 경험이나 자세성질식사에 대한 이해 정도가 다른 점 등을 원인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자세성질식사는 하나의 특정한 질식의 형태보다는 다양한 형태의 자세로 인해 호흡장애를 유발하는 사인 군에 가까운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여러 교과서에서 십자가형, 시설의 제압, 엎드린 자세 구속 등을 특별한 형태의 자세성질식사로 구분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교과서에 따라서는 인카플리타멘토(incaprettamento) 같은 특수한 형태의 타살성 질식사, 역위(head-down position), 바로 서서 매달림(orthograde suspension) 등을 전형적인 자세성질식사와 다른 범주로 구분하기도 한다[
1,
5,
6]. 이들의 사망 기전과 부검 소견은 전형적인 자세성질식사와는 크게 다를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특히 시설의 제압이나 엎드린 자세 구속은 구류 중 사망(death in custody)이나 인권 관련 사망에서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으므로, 이들과 관계된 사망의 경우, 심장질환이나 정신질환 등의 기존 질환, 마약 및 향정신성의약품을 포함한 약물의 사용, 에틸알코올 등의 검사를 좀 더 철저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요약하면, (1) 자세성질식사는 기계적질식사의 일부로 외상성질식사와 구분이 필요한 사인이고, (2) 진단을 위해 완전한 부검 외에도 충분한 검사실 검사와 사건의 정황이나 사망 현장의 상황에 대한 파악이 필요하며, (3) 특히 시설의 제압이나 엎드린 자세 구속 같은 특별한 형태의 자세성질식사의 진단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