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생명의 가치에 경중이 있을 수 없고, 그것은 영아의 생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지만, 그 영아라는 존재는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자신의 생명을 지킬 능력이 없는 가장 취약한 존재로서, 그의 생존을 위해서는 타인의 보호와 도움이 필수적이다. 대한민국 헌법(제34조)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여야 할 책임이 국가에 있다고 명시하고 있고, 그 책임은 영아에 있어서도 예외일 수 없을 것이나, 현실은 그러하지 못한 듯하다.
영아유기 및 유기치사의 통계자료를 보면, 관련 통계는 ‘유기’의 항목에서 피해자를 ‘6세 이하’, ‘12세 이하’, ‘15세 이하’, ‘60세 초과’ 등, 연령기준으로 분류하고 있을 뿐이다. 최저연령 구분이 ‘6세 이하’로서, 1세 이하인 영아유기의 항목은 포함하고 있지 않다. 이는 영아 유기와 그로 인한 사망에 관한 범죄자료가 관리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그만큼 이에 대한 사법기관의 관심이 높지 않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영아유기 및 유기치사 범죄에 대한 정확한 실태 파악을 어렵게 만들고 있어, 대안으로 영아유기에 관한 보도자료를 찾아보면, 2010년에서 2019년까지 10년간 매년 최저 41건에서 최고 225건의 영아유기가 발생했고, 연평균 127건에 이르고 있어[
1], 범죄의 내용은 물론 발생 건수에 있어서도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음이 분명하다.
가장 취약한 생명체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인 영아유기는 생명의 존엄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가치 인식에 심각한 도전을 야기하게 된다. 현행법은 영아를 유기하거나 유기로 인해 상해 및 죽음에 이르게 할 경우, 형법 제272조(영아유기)와 제275조(유기등 치사상)를 적용하여 처벌하고 있다. 직계존속이 치욕을 은폐하기 위하거나 양육할 수 없음을 예상하거나 특히 참작할 만한 동기로 인하여 영아를 유기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고(제272조), 그 결과 상해에 이르게 하면 7년 이하의 징역, 사망에 이르게 하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제275조). 이러한 처벌 규정의 타당성은 별론으로 하고, 이들 조항이 유기범죄로부터 영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의문이 제기될 여지가 있고, 결국 관련 법 조항의 범죄예방 효과에 대한 검증이 필요해지며, 그것을 통해 생명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실효성 있는 안전장치와 예방 수단의 마련을 위한 정책적 검토가 절실하다.
모성이란 타고난 본능이자 학습되는 경험이면서, 어머니와 아이가 맺는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자질로 정의되는데, 이는 인간을 탄생시키고, 인류의 공동체적 삶의 존속을 가능하게 하며, 생명을 보호하고 성장시키는 기능을 한다[
2]. 그러나, 자신이 출산한 영아를 유기하여 죽음의 궁지로 내모는 사건들을 보면, 타고난 본능이라는 모성의 정의에 대해 의문마저 갖게 한다. 생명의 존엄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일 것임에도 그 존엄을 위협하는 ‘영아유기’ 범죄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음에는 어떤 원인이 잠재되어 있는지를 냉철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더욱 시급하고 절박해지는 까닭은 저출산, 고령화의 문제와 관련하여, 인구절벽, 사회소멸이라는 우리 사회의 당면 과제와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영아유기 범죄의 핵심 특징을 파악해 내기 위해 관련 범죄에 대한 상세 분석을 시도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 관련 판례를 확보하여 구체적인 사항을 분석하는 것이 유용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것을 통해 임신의 정황, 산모-생부 관계, 유기의 이유, 출산 및 유기의 장소, 영아의 사인 등을 분석하여 핵심정보를 추출해 낼 수 있다면, 그 정보는 영아유기 범죄의 예방과 수사를 위한 주요 자료가 되어, 소중한 인명의 희생을 막을 정책적 대안의 마련에 의미 있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고 찰
영아 유기는 사회적 해악이 결코 작지 않은 심각한 범죄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은 매우 낮아 보인다. 이러한 사정은 관련 범죄에 대한 온정적 판결 결과를 통해서도, 또한 영아유기 사건의 발생에 관한 통계자료의 미비를 통해서도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현재 우리의 범죄통계는 유기 사건을 ‘6세 이하’ 등의 기준으로 분류하고 있어, 1세 이하 특히 출산 직후의 신생아가 유기되는 심각하고 치명적인 범죄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영아유기 사건을 유기의 장소와 유기의 정황을 반영하여 분류하고 있는데, 미국 보건복지부는 Abandoned infants, Discarded infants 같은 유형분류를 통해 영아유기 사건을 좀 더 구체적으로 분류하고 있고, 이는 부모가 영아를 돌볼 의사 또는 의지가 없어서 아이를 출산 후 병원에 방치하는 것과 병원이 아닌 공공장소 또는 기타 부적절한 장소에 다른 사람의 관리나 감독 없이 방치하는 경우를 구분한다[
3]. 이와 같이 우리도 좀 더 세밀한 기준을 가지고 영아유기를 분류할 필요가 있고, 특히 신생아 유기에 대한 적극적인 통계자료의 관리가 시급하다. 국내 영아유기 관련 연구는 주로 베이비 박스의 법제화 등 영아의 생명권을 주제로 하고 있고[
4,
5], 영아살해 범죄에 대한 분석이 일부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6,
7], 여전히 영아유기와 유기치사를 심층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매우 드물다.
산모-생부의 관계는 지속적 관계가 12건(60%), 일회성 관계가 8건(40%)으로 관계 유형에 따라 산모의 특징과 유기의 이유를 비교해보면, 일회성 관계에서의 산모는 20대 6건, 10대 1건, 30대 1건이었고, 지속적 관계에서의 산모는 20대 7건, 30대 2건, 10대 1건, 40대 1건이었다. 나머지 1건은 연령이 확인되지 않았다. 일회성 관계와 지속적 관계 양자에서 산모는 20대가 가장 많으나, 연령대별 관계 유형에 따른 주목할만한 차이는 드러나지 않았다. 관계 유형에 따른 유기의 이유를 보면, 일회성 관계에서는 경제적 곤란이 5건이었고, 부모에게 출산 사실이 알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4건, 생부가 누구인지 알지 못함으로 인한 어려움이 4건이었다. 반면 지속적 관계에서는 부모나 배우자에게 출산 사실이 알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6건, 경제적 곤란이 3건, 영아를 키울 자신이 없다는 것이 3건이었다. 이밖에 유부남과의 불륜관계(1건), 고등학생 신분(1건)과 같이 특수한 상황이 이유가 되기도 했다. 일회성 관계이든, 지속적 관계이든 부모(가족 포함)에게 출산 사실을 감추고자 함과 경제적 곤란이 주요 이유가 된다는 점은 영아유기 범죄의 예방을 위한 대책 마련에서 의미 있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지만, 보다 더 근본적인 유기의 이유는 원치 않은 생명의 출산이라는 데 있을 것인 바, 이렇듯 수면 아래 감춰진 유기의 사유에 대한 정책적인 고려가 포함되어야 한다.
출산의 장소는 대부분이 주거지(16건)였는데, 방 안이 4건, 화장실이 12건으로서, 혈흔과 이물 제거 등 산후 뒷수습이 용이하여 화장실이 선호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나머지 4건의 출산은 병원 화장실, 직장 화장실, 여관, 폐가에서 이루어졌는데, 직장 화장실에서의 출산 건은, 임신 사실 자체는 알고 있었으나 근무 중에 출산이 이루어졌고, 병원 화장실에서의 출산 건은, 임신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지내오던 중 복통으로 내원한 응급실에서 진료대기 중에 그곳 화장실에서 출산하게 된 것이었다. 이 두 사건은 예상치 못한 출산의 과정에서 타인의 접근을 차단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화장실이 선택될 수 밖에 없었을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여관과 폐가에서의 출산 건의 경우, 두 산모 모두 출산 예정일을 알고 있었고, 거기에 비추어보면, 출산 자체를 감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장소를 선택한 것으로 해석된다.
영아유기에서 사후 유기와 살아있는 영아의 유기는 법적 처벌의 내용은 물론 유기의 동기나 정황과 관련해서도 중대한 차이가 있을 것인 바, 유기 당시 영아의 생사 여부와 함께 정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0건의 유기치사 사건 중 9건에서 유기의 장소(또는 공간)가 판결문에 드러나고 있는데, 그 공간은 방안의 서랍장, 종이상자, 여행용 캐리어, 보일러실, 베이비 박스, 아파트 화단, 야산 입구 바위 위, 병원 근처 노상, 헌옷수거함 내부였다. 그중 방안의 서랍장(#4)과 종이상자(#9)에 유기된 사건에서, 두 산모는 주거지에서 출산하여 영아의 탯줄을 자르고, 수면바지와 수건으로 감싸는 등의 ‘최소한의 조치’는 취하였으나, 이후 침대에 8시간 가량 눕혀두고 이후 서랍장에 넣었거나(#4), 화장실 청소를 하고 돌아온 뒤, 영아가 움직이지 않자 종이상자에 넣어 방치하였다(#9). 이들 두 사건의 공통점은 ‘최소한의 조치’ 이후 일정 시간 방치하였다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공간으로 영아를 옮겼다는 것이고, 또한 이들은 범행 후 자수를 했다는 점이다. 반면, 여행용 캐리어에 영아를 유기한 사건의 경우, 주거지에서 출산한 후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방치하고, 이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여행용 캐리어에 넣어 둔 채 외출했다. 이 사건에서 검은 비닐봉지는 영아의 시체를 물건 취급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이는 최소한의 조치마저도 제공하지 않은 정황과 연계할 때, 영아의 생존을 바라지 않고, 그 존재를 숨기고자 함은 물론, 유기의 기회만을 모색하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병원 건물 밖으로(#2) 유기한 사건에서도 병원 화장실에서 출산한 후 거기에 구비된 비닐봉지에 영아를 담고 있다가 창문 밖으로 던지고 자리를 떠난 것으로, 의료진이 상주하는 시설임에도 의료진의 도움을 구하지 않음으로써 아이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헌옷수거함 내부(#5)와 보일러실(#8)에 유기된 사건에서, 두 산모는 주거지에서 출산 후 영아의 생존을 위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각각 수건 1장으로 감싼 영아를 1시간 30분 동안 화장실에 방치한 후 시체를 보일러실에 유기하거나(#5), 방안의 책상 아래 방치(2주간)하다가, 신발주머니에 넣어 시체를 유기했다(#8). 이것은 앞선 검은 비닐봉지 사례처럼 영아(시체)를 물건으로 취급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유기의 기회만을 모색하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법원은 이들의 행위를 ‘증거인멸 행위(보일러실)’ ‘범행 수법이 나쁨(헌옷수거함 내부)’이라고 판시하였다. 두 산모는 시체유기의 장소를 발견이 어려운 곳으로 택한 것으로 보이고, 이는 출산 후 최소한의 조치도 취하지 않은 행동과 연계할 때, 범행의 적극적인 의도가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된다.
아파트 화단(#1)과 야산 입구 바위 위(#6) 유기 사건에서, 아파트 화단 유기는 변기에 빠진 영아를 1시간 방치한 후 대야에 담아 유기한 것이었고(#1), 야산 입구 바위 위 유기는 영아의 탯줄을 자르고 수건으로 감싸는 등의 최소한의 조치는 취했으나, 수유를 거의 하지 않고(영아가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망한 영아를 패딩으로 감싸 유기한 것이었다(#6). 이 두 산모는 영아(시체)를 타인의 눈에 잘 띄는 곳에 유기한 것으로, 시체를 일찍 발견되게 하고자 한 의도가 아니라면 인간의 존엄을 고려하지 못한 행동으로 비쳐질 수 있다.
베이비 박스(#10)에의 유기 사건은 욕조 안에서 영아를 수건으로 덮어 두고, 물을 뿌려 욕조를 청소했으며, 이후 모친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 모녀가 공모하여 유기한 것으로, 이에 대해 법원은 ‘베이비 박스에 넣어 두었으나 보호조치가 미흡해 사망에 이르렀다’고 판시했다. 이 산모는 분만 후 영아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욕조를 물청소하는 등 영아의 안전을 무시하는 행동을 했으나, 친모의 조력을 통해 베이비 박스에 유기한 것으로, 출산과 영아의 처리에 맞닥뜨려 산모가 겪어야 했을 고민을 짐작하게 한다.
영아가 생존한 채 발견된 사건(10건)에서의 유기의 장소는 교회(건물 안 1건, 건물 밖 1건), 빌라의 현관문 앞, 공원 화장실 안, 헛간, 지하철역 입구의 벤치, 아동복지시설의 주차장, 화단, 텃밭, 원두막이었다. 교회 안, 화단, 빌라 현관문 앞, 공원 화장실 안, 지하철역 입구 벤치, 원두막, 아동복지시설의 주차장 유기의 경우, 영아를 옷이나 담요로 감싸 유기했고, 이들 장소의 특징은 인적이 드물지 않은 곳이라는 점이다. 영아를 감싼 조치는 체온유지를 위한 것이고, 유기의 장소는 타인에 의해 발견되기 쉬운 곳으로, 이에 대해 법원은 사람들의 왕래가 있는 곳에 유기한 것으로서, ‘영아가 일찍 발견되어 건강 상태가 양호하다’거나 ‘다른 사람이 데려가 키워주기를 바라면서’ 또는 ‘구체적인 위험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한 것이라고 판시하였다. 이와 유사하게, 헛간 유기 사건은 옷과 담요로 감싼 영아를 자신이 요양보호사로 근무했던 고객의 집 안(헛간)에 유기한 것으로, 집주인이 아이를 키워주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음이 엿보인다. 반면, 텃밭 유기 사건은 근무 중 직장(공장) 화장실에서 출산하게 되자, 공장 근처(20 m)에 유기했고, 교회건물 앞 유기 사건에서도 영아를 담요로 감싸 유기한 것을, 우연히 근처를 지나던 시민에 의해 발견되어 두 영아는 구조되었다. 결과적으로, 유기의 장소 유형(옥내-옥외)과 영아의 생존 여부, 유기의 사유, 산모-생부 관계 유형, 임신의 정황, 산모의 연령, 영아의 생존을 향한 산모의 바람 사이에 의미 있는 관련성은 드러나지 않았고, 영아의 생존율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인자는 ‘최소한의 조치’의 제공 여부에 달려있었다. 유기치사 사건 중에서도 3건에서는 ‘최소한의 조치’가 제공되었지만, 이후 영아가 장시간 방치됨으로써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었고, 이 사건들을 통해 볼 때, 영아의 생존을 위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출산 직후의 보호조치이지만 영아를 살리고자 산모의 의지가 담긴 지속적인 조치가 추가되지 않는다면 영아의 생명을 지켜낼 수 없음이 드러난다.
영아유기에 있어 산모의 연령 등 인구사회학적 특징과 유기의 사유, 그리고 그들 요인 사이의 관련성을 파악하는 것은 영아유기의 예방을 위한 정책의 마련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영아유기 사건에서, 산모는 10대-20대가 15건으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이들은 모두 미혼이었으며, 4건을 제외하고는 주거지(화장실 또는 방안)에서 홀로 출산했다. 이들 사건에서 유기의 주된 이유는 출산 사실을 숨기고자 함이었는데, 특정 대상의 언급이 없는 2건과 함께, 부모(6건), 가족(1건) 등 구체적인 대상을 언급하며 이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난처하고 절박한 상황에서 가장 먼저 도움을 요청해야 할 대상인 부모가 은밀한 출산을 비밀로 남겨두기 위해 가장 멀리해야 할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 영아유기 범죄의 이면에 자리하고 있다. 이외에 경제적 곤란(5건)과 영아의 생부를 알 수 없음(4건) 등이 이유가 되고 있다. 30대(3건)와 40대(1건)의 산모들의 출산 장소는 모두 주거지 화장실이었고, 유기의 이유는, 경제적인 곤란(2건), 불륜관계에서의 출산(1건), 계부에게 출산 사실을 숨기기 위함(1건)이었으며, 따라서 경제적인 곤란, 불륜, 특수한 가족관계 등의 특별한 개인 사정도 고려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치사를 포함한 영아유기 사건에서 1건의 실형 선고를 제외한 19건 모두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 이에 비추어보면, 법원은 영아유기는 물론, 유기치사에 대해서도 처벌의 필요성을 낮게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그것은 판결문에 그대로 드러난다. 법원이 산모의 곤궁한 처지를 양형에 고려하는 것은 십분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러한 배려가 과연 피해자인 영아에게도 미치고 있는지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영아유기에서 아이들의 신체적 건강이 안전하다, 즉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것이 감형의 빈번한 이유가 되고 있으나, 버려진 아이들이 앞으로 겪게 될 심리적 외상을 고려한다면 아이들의 신체적 안녕만을 이유로 한 감형은 그 사건을 통해 남겨질 심리적 외상의 해악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라는 지적이 불가피해진다. 버려진 영아들은 모성 박탈(maternal deprivation)을 경험할 여지가 높고, 이는 불안정 애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불안정 애착은 향후 발달의 위험요인으로 작용하여, 아동기의 심리사회적 부적응으로 연결될 가능성을 키우며[
8,
9], 이러한 특성은 품행장애, 주의력장애, 우울장애 등의 심각한 정신병리와 관련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10].
유기와 유기치사 사이에 형량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도 주목을 끈다. 영아유기 사건에서 처벌만이 능사가 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생명의 손실을 불러온 범죄에 대한 처벌로서는 너무 가벼운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떨치기 힘들다. 반복되는 영아유기 범죄와 그로 인한 생명의 손실을 방지하고자 한다면, 적어도 영아의 죽음을 불사하겠다는 의도가 드러나는 사건에 대해서만은 엄벌을 가한다는 형사정책적 의지가 법원의 판결을 통해 천명될 필요가 있다.
분석한 판례 중 2건(#11, #13)에서는 영아유기의 재범이 확인되었다. #11 산모는 영아를 유기한 전력이 2번 있는데, 이유는 ‘생활고’였다. 정리해보면 20건 중 2건(#11, #13)에서 영아유기가 재발(10%)했다는 것이고, 범행의 이유는 ‘경제적 곤란’으로 동일하였다. 유사한 사례로, #5 산모의 경우, 본 사건 범행 1년 전에 불상남과의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입양시킨 전력이 있었다. 과거 불상남과의 사이에서 낳은 영아를 입양 보낸 전력이 있음에도, 한번 더 불상남과의 사이에서 출산한 영아를 유기한 것이었다. 이들 사건은 유기 범죄를 막기 위한 우리 사회의 대응이 얼마나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이어야 하는지를 드러내 줄 뿐 아니라, 책임 있는 성행동을 위한 교육과 함께 경제적 여건까지를 고려한 근본적인 정책적 대안의 마련이 시급한 과제임을 역설하고 있다. 또한 소중한 생명의 허망한 손실을 막기 위한 조치로서, 임신과 출산의 노출을 꺼리는 산모들을 위한 위기개입이 적극적으로 지원되어야 하고, 거기에는 청소년상담복지센터, 해바라기센터, 아동보호전문기관과 함께, 대한사회복지회 등의 전문입양기관과의 연계를 통해 출산과 출산 후 대책까지를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